용종 제거로 실비보험 혜택을 보려던 고객에게 일반암 진단금을 받아 드린 사례이다.
실손보험 청구 서류가 아닌, 추가로 받은 서류를 확인해보니 직장 유암종(신경내분비 종양)이었다. 생존률이 높다곤 하지만 암으로 인정받는 질병이다.
고객이 보유한 기존 상품들 중 2개에서 해당하는 내용을 찾아서 청구해드렸다.
먼저, 1995년에 가입한 A생명보험사는 해당사항이 없다며 한푼도 지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2017년에 가입한 B생명보험사는 소액암 보험금을 지급했다.
기간은 꽤 걸렸지만, 양사로부터 일반암 보험금을 모두 받아드리는데 성공한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용종을 제거했다는데 알고보니 직장 유암종(신경내분비종양)이었다
2017년 8월, 고객에게서 용종을 제거했다며 전화가 왔다.
용종 제거도 실비 나와요?
실손보험으로 지불한 비용의 일부를 지급해 드리며, 청구를 돕겠다 말씀 드렸다. 그러던 중 묘한 말씀이 스쳤다.
근데, 의사가 암이나 매한가지라 하더라구요.
필자는 이상한 느낌을 받아, 더 이상의 어떤 말은 없었는지 물었지만 별달리 기억할만한 건 없다 하셨다.
원래 의사들은 환자를 안심시키려 혹은 알아듣기 쉬우라고 다양한 이야기를 구사한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필자가 직접 확인해야겠다 싶어 한가지 당부를 드렸다.
혹시 모르니, 번거로우시더라도 조직검사결과지도 나중에 팩스로 보내주실래요.
처음 온 서류는 당연히 실손보험 청구를 위한 병원비 영수증들과 진료비 세부내역서이다.
그리고, 훗날 도착한 상세 서류를 살펴보니, 아래와 같이 기술돼 있다.
[진료확인서]
...전략...
진단명: 결장직장 행동양식 미상의 신생물
한국질병분류기호: D37.5
증명내용: 상기환자는 본원에서 시행한 2017-06-20 (외래) 결장경하 점막절제술 및 복부 CT에서 위와 같이 진단됨
내원일자:
2017-05-25, 2017-06-20, 2017-07-17, 2017-08-09, 2017-08-16
...하략...
[병리판독결과]
Diagnosis
...전략...
Rectum, 10cm above anal verge, endoscopic mucosal resection:
...중략...
Carcinoid tumor, well-differentiated neuroendocrine tumor
...중략...
location: mainly in submucosa with extension into mucosa
...하략...
진료확인서에는 그저 [용종제거]스러운 문구들이다. 그리고, 질병코드 D37.5는 경계성종양에 해당한다.
사실, 한글로는 어디에도 용종도 유암종도 없다. 그런데, 조직검사결과지(=병리판독결과)에는 carcinoid tumor(유암종), 그리고 neuroendocrine tumor(신경내분비 종양)라고 적시되어 있다. 과거엔 유암종으로, 요즘은 신경내분비 종양이란 단어가 확대되어 가는데 같은 말이라 보면 된다.
그리고, 아래에 점막하층(submucosa)에 주로 분포하며 점막(mucosa)에까지 걸쳐 있다라고 적혀 있다. 점막하층까지 침윤이 일어난 것.
가지고 있던 보험들을 전부 펼쳐놓고 2개 생명보험사 상품에서 암진단금이 발견되었다.
- 1995년 6월에 가입한 A생명보험사의 연금보험 속 암진단금.
약관에 유암종은 물론 경계성종양에 대한 언급이 부재하다. - 2017년 2월에 가입한 B생명보험사의 종합보험으로 90일은 지났고, 1년은 되지 않은 상황.
약관에 유암종은 언급 없으며, 경계성종양에 대해 소액암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단 실손보험부터 청구해 드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차분히 설명 드렸다.
- A사는 아예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것이기에 필자와 동행 방문.
이 때 안 준다고 해서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면 함. - B사는 경계성종양이라도 지급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일단은 우편 접수.
하지만 장기적으로 일반암까지 인정 받으려 노력. - 해당 보험금을 받으면, 향후의 보험 가입에 불리한 점이 있을 수 있음.
고객은 잠시 고민을 마치고, 청구에 동의를 했다.
B 생명보험사는 경계성 종양으로 소액진단금을 바로 지급, 일단은 소강 상태로 두기로 했다
우편으로 접수한 B생보사가 경계성종양으로 소액암 진단금을 바로 지급했다. D37.5라는 코드에 근거한게다.
애초에 용종제거로 실비보상 정도를 생각했던 고객은 작지 않게 놀랐다.
그런데, 소액암 보험금을 받을 사안이 아니라고 말씀을 보태고, 일단은 A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B보험사는 일반암을 인정 받는데 시일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괜찮으시겠어요?
소액암이라도 보험금이 나오면서, 필자를 더 신뢰하게 되었다.
A 생명보험사는 유암종에는 한푼도 줄 수 없다고 했다
A생명보험사의 창구를 고객과 함께 방문했다.
함께 서류를 내미니, 해당 사항이 없어 드릴게 없다는데 답변이 차갑다.
이 상품은 소액암/유사암 같은 구별이 없어, 제자리암/기타 피부암/점막내암 등이 아예 표기도 없던 1995년의 상품인 것이다. 특히, 경계성 종양이 적혀있지 않아서 그러하다.
고객의 얼굴부터 빨개졌다. 안 되는걸 되게 해달라는 억지쓰는 느낌이 들었을게다.
준비해 간 약관과 판례를 보이며 차근히 암을 주장했다.
경계성 종양의 언급이 있건 없건, 일반암 보험금을 주셔야 한다는 피력이다.
어느새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고객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느껴졌다. 장내가 술렁이자, 이내 센터장이 나왔다.
바통은 창구직원에게서 센터장에게로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창구에서 소란을 일으킬 생각은 없으니, 복도를 돌아 골방같은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바깥과 차단되고 살짝 어둡기까지한 방은 VIP룸이라기보단... 말하자면, 진상고객 대응실 같은 곳이었다. 고객은 더욱 소침해졌다.
창구 직원에게 주장했던 바를 다시 한번 차분히 고했다. 센터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지급해 드리려고 해도 그럴 권한은 안 되구요.
본사에 얘길 올려둘테니, 연락을 기다려 보시겠어요.
그러겠다 답하고 창구를 나서며, 고객에게 다시 한번 당부를 일렀다.
조사관이 나올 것 같네요.
절대 혼자 만나는 약속을 잡지 마시구요. 언제가 되든 저와 함께 뵙도록 해요.
다시 한번 바통은 보험 조사관에게로 넘어갔다
창구직원에서 센터장으로, 그리고 조사관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고객에겐 적잖은 스트레스 상황이다. 이 과정마다 스스로가 진상인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큰 원인이다.
시일이 흘러, 찻집에서 묵직한 가방을 든 조사관과 만나게 되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조사관이 먼저 영문 학술지를 복사한 A4 다발을 우리쪽으로 친절하게 돌려가며 보여준다.
창구에서는 차가운 언사나 한숨으로 홀대가 있었는데, 조사관은 부드럽고 지적인 기꺾기부터 들어온다. 한글문서도 많은데, 굳이 영문 학술지를 가져오다니.
고객님, 이것 보시겠어요. 여기 유암종은 암이 아니라고 하지요?
고객 대신 손에 받아 흘깃 보고는 슬그머니 밀어냈다. 그리고, 보험금의 지급은 ①의학적 판단1도 중요하지만, ②약관과 ③법에 근거하는 것 아니냐며 되물었다.
그러자 다시 두꺼운 A4 서류 뭉치 속에서 다건의 판례들을 찾아 꺼낸다. 유암종은 일반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들이다.
이제는, 내가 준비해간 판례들을 꺼내어서 대조했다. 유암종을 일반암으로 지급한 사례들이다.
법원의 판단도 구체적 상황에 따라서 오락가락하는 것이 사실이다.
각자 준비해온 판례들을 한자리에서 대조해보니 필자에겐 더욱 확신이 섰다. 최근으로 올수록 유암종은 일반암으로 판단되고 있는 경향이 확인된다. 판례들의 추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조사관이 직접 준비해온 자료가 여기까지라니!
제(필자)가 준비한 판례가 더욱 ①최근이고, ②상급심이네요.
그럼에도, 조사관은 내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아 보였고, 기다려 보시란 말과 함께 자리를 마무리하고 헤어졌다.
수일이 지나고 고객에게서 일반암 진단금이 입금되었다는 전화가 왔다.
이런게 되는구나 싶네요.
조곤조곤 말씀하시는게 멋지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요.
우리 편이라 다행이라 생각해요 ^^
B 보험사에 다시 일반암 보험금을 청구했다
B보험사는 응답이 아예 없다. 세월을 두고 잊을만 하면 다시 한번씩 청구했다. 여기엔 청구 시효 3년이 소멸되지 않도록 갱신하기 위함도 있다.
서류접수만 3번 정도 한 것 같다. 고객과 함께 보험사의 지급부서와 통화도 했다. 대화가 어느 정도 진척있는 듯 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기다려 보시란 얘기와 뒤따르는 시간끌기식 무대응.
손해사정사에게 바통을 넘겼고 결국 일반암 진단금이 나왔다
여기서부터는 손해사정사나 변호사의 공식 라이센스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자문을 구하는 손해사정사에게 상황과 서류를 넘기고 성공보수 형태로 진행을 해도 되겠냐고 고객에게 여쭸다. 필자를 통하니 조금은 저렴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말과 함께.
손해사정사나 변호사를 바로 통하기엔 고객들에게 벽이 높다.
- 고객에겐 법 어쩌구 하는 것 자체가 큰 장애이며, 진상고객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도덕도 한 몫한다.
- 손해사정사든 변호사의 입장에서도 보험금의 규모가 크지 않으면, 수임하고 일을 처리하기에 곤란이 존재한다.
고객은 동의했고, 손해사정사도 진행을 하기로 했다. 다만, 보험금이 그리 크지 않은 건이라 여러건을 묶어서 진행할 것이라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고객이 여기까지도 동의했다.
2개 보험사 모두에서 일반암 보험금을 받아내는데 성공
한국소비자원: 대장암과 갑상선암 관련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례 많아
참으로 지난한 세월을 보내고 결국 일반암 진단금을 입금 받았다며 연락을 들었다. 용종 제거한지 약 4년 반만의 일이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다시 한번 스쳤다.
절대 고객을 혼자 보내선 안 된다.
고객이 설득 당하고 나쁜 사람으로 몰려 물러설 만한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그러다, 이상한 사람(필자)이 시키는대로 했다가 나(고객)만 이상한 사람됐네... 하며 신뢰만 추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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